스포츠 담론/국내축구

이강인 출전 논란? 벤투 감독을 욕할 수 없는 이유

Magnetic north 2022. 9. 2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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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은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축구는 어떤 스포츠보다 감정적인 스포츠다. 팬들도 선수도 피치 위에 묵은 감정을 쏟아내기 마련이다."

 

맞다. 축구는 굉장히 감정적인 스포츠다. 피치 위 격렬한 몸싸움, 감정싸움과 함께 팬들의 자세도 굉장히 감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축구판에서 일하면서 팬들의 어떠한 반응, 비판도 이해하는 편이었다. 축구는 감정적인 스포츠라는 대전제를 앞에 두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선수와 감독을 향한 비판과 비난에도 어느정도 합당성, 정당성은 있어야 한다. 축구가 굴러가는 이치조차 모르고 무작정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 

 

월드컵을 불과 50여일 앞둔 시점에서 벤투 감독에게 '이강인 출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워낙 보수적인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미래이자 현재 스페인 라 리가에서 최고의 폼을 보이고 있는 이강인을 쓰지 않는 데서 나오는 팬들의 울분과 분노다. 

 

벤투 감독은 국내에서 열린 최종 모의고사격인 두 차례 평가전을 1승 1무,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비난을 받고 있다. 바로 이강인을 발탁해놓고 출전시키지 않아서다.

 

그러나 이러한 팬들의 비난은 과연 축구,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이해하고 하는 것인지 참 의문스럽다. 우리는 무슨 수로 벤투 감독을 비판할 수 있을까. 벤투 감독은 이상적인 방향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팬들의 볼멘소리는 한국 축구, 벤투 감독에 훼방을 놓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당신들은 시험 전날 학원 등록하나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32개국이 펼치는 대회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거다. 

 

나는 무지한 축구팬들이 혹시라도 우리나라가 이 32개국 중에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는 상상을 할까봐 소름이 끼친다. 누누이 말해왔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축구 변방국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시아는 월드컵 출전 티켓 쿼터가 많아 대한민국은 농어촌 전형으로 매번 월드컵에 나갈뿐이지 실력적으로는 항상 '언더독' 도전자 위치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2002월드컵 4강 기적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 16강에 올라간 것이 전부다. 매번 경우의 수를 따져왔고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대견스러운 입장인 셈이다. 

 

팬들의 눈높이가 도대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중미 강호 코스타리카와 비겼다고 벤투 감독을 욕하는 것을 보면 기가 찬다. 아무리 1군이 아니어도 우리가 코스타리카와 비긴 것은 기특하고 박수칠 일이다. 

 

각설하고, 우리같이 언더독은 확실한 플랜 A를 잘 구축해야 한다. 확실한 색깔을 갖춰야만 본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선수비 후역습이란 체제를 굳건히 한 이란이 그나마 월드컵에서 선전하는 이유다. 약자는 필살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돌려서 말한다.

 

반에서 공부 못하는 열등생이 시험 기간에 전교 1등처럼 이과목 저과목 마구잡이 공부하면 어떨까. 공부를 잘 못하면 한 과목이라도 잘해서 평균 성적을 올려야 한다. 자신이 그나마 잘하는 걸 계속해서 연마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는 그러한 입장이며 벤투 감독이 정말 정확하게 이를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벤투 감독은 부임 후 4년 동안 고집스럽게 플랜 A를 묵묵히 잘 구축해왔다. 그리고 그 축구의 색깔이 이제야 보이는 시점이다. 지역 예선도 최고의 성적으로 통과했다. 이렇게 여유있게 티켓을 따냈던 감독이 있엇으면 이름을 대봐라. 이러한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플랜 A 구축은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굉장히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벤투 감독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다. 

 

 

반면 어떻게든 머리 싸매고 해보겠다는 열등생한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너 지금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라며 훼방을 놓는 자들이 한국 축구팬들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벤투 감독이 새로운 실험을 할 이유도, 써보지 않은 선수를 쓰는 모험수를 택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왜 1년 6개월 동안이나 써보지 않은 이강인을 기용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축구를, 월드컵을 과연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시즌 초반 반짝하는 이강인을 마치 라리가에서 메시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처럼 부추기는 언론도 문제다. 이강인의 시즌 도움은 3개다. 마치 라 리가 도움왕을 벤치에 둔 것처럼 보도하는데, 아직 시즌 10경기도 치르지 않았다. 

 

2선에서 이강인의 플레이 스타일은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이강인의 전술적 역할론에 대해서는 더이상 없급하지 않겠다. 설사 이강인이 전술적 활용도가 높거나 기량이 빼아나다 하더라도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기용할 의무는 전혀 없다.

 

감독은 팀의 총 책임자다. 선수 기용 전권을 쥐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도 본인이 책임지는 외로운 자리다. 팬들은 고작 50일 남은 시점에서 훼방을 놓지 말고 열렬한 응원을 보내주자.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고 잘 모르면 제발 설치지 말고 뿅뿅 지구오락실이나 열심히 시청하자.

 

4년 전 신태용 감독이 실험하면 실험한다고 뭐라하고 이번엔 플랜 A 구축해놓으니까 실험 안한다고 뭐라하는 한국 축구팬들이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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